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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nge Loops와 미래의 자아: 괴델 에셔 바흐에서 찾은 정체성의 역설

· 11min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인류가 가장 오래 고민해온 물음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질문에 호프스타터(Douglas Hofstadter)의 《괴델, 에셔, 바흐》가 제시하는 “이상한 고리(Strange Loop)” 개념으로 접근하면, 놀라운 통찰들이 드러난다.

특히 “미래의 나를 타인처럼 느끼는” 현상과 고전적인 “테세우스의 배” 역설을 함께 살펴보면, 정체성의 본질과 더 충실한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다.


이상한 고리: 자기 참조의 마법

호프스타터의 “이상한 고리”는 시스템이 추상화의 여러 층을 거쳐 자기 자신을 다시 참조하는 현상이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에셔의 착시 그림, 바흐의 푸가가 모두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다.

A는 B를 참조하고
B는 C를 참조하고
C는 다시 A를 참조한다

이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단순한 구성 요소들이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 자아라는 환상을 만들어낸다.

인간의 의식도 이상한 고리다

호프스타터는 인간의 의식 자체가 거대한 이상한 고리라고 주장한다:

  • 뇌의 뉴런들이 서로 연결되어
  • 패턴과 상징을 형성하고
  • 이 상징들이 다시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구조

“나”라는 존재는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뇌 속에서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자기 참조적 패턴이다.


테세우스의 배: 연속성의 역설

고대 그리스의 테세우스 왕의 배는 오랜 항해를 하며 낡은 널빤지를 하나씩 교체했다. 모든 부품이 교체된 후에도 그것은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인가?

두 가지 관점의 충돌

실체론적 관점: 물질이 바뀌었으니 다른 배다
기능론적 관점: 구조와 기능이 같으니 같은 배다

둘 다 나름의 논리가 있지만, 완전한 답은 없다. 이것이 바로 정체성의 역설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몸도 끊임없이 변한다:

  • 세포는 7년마다 거의 완전히 교체
  • 뇌 뉴런도 일부는 평생에 걸쳐 재생
  • 기억도 재구성되며 변화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을 “같은 사람”이라고 느낀다. 왜일까?


이상한 고리로 보는 정체성

호프스타터의 관점에서 보면, 정체성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자기를 참조하며 생성되는 패턴이다.

자기 참조적 서사(Self-Referential Narrative)

“나”는 다음과 같은 순환 구조로 구성된다:

  1. 경험기억을 형성하고
  2. 기억자아 개념을 만들고
  3. 자아 개념이 다시 경험을 해석하는 기준이 된다
graph LR
    A[경험] --> B[기억]
    B --> C[자아 개념]
    C --> A
    C --> D[미래 계획]
    D --> A

이 과정에서 “나”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패턴임이 드러난다.


미래의 자아를 타인으로 느끼는 현상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미래의 자신을 현재의 자신보다 타인에 가깝게 인식한다. fMRI 실험에서 “10년 후 나”에 대해 생각할 때 뇌의 활동 패턴이 “타인”을 생각할 때와 유사하게 나타난다.

시간적 할인(Temporal Discounting)

이 현상은 시간적 할인 현상으로도 설명된다:

  • 미래 보상의 가치를 현재 시점에서 할인
  • 시간적 거리가 멀수록 할인율 증가
  • 결과적으로 미래 자아에 대한 책임감 감소

이상한 고리 관점의 해석

이상한 고리 관점에서 보면, 이 현상은 자기 참조 구조의 시간적 한계 때문이다:

  1. 현재의 자아 개념은 현재의 기억과 경험에 기반
  2. 미래의 자아는 가상의 경험과 기억에 기반
  3. 두 참조 구조가 충분히 연결되지 않아 별개로 인식

미래 자아 연결의 실천적 의미

왜 미래 자아를 생생히 상상하면 더 충실하게 살까?

1. 자기 참조 고리의 확장

미래 자아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것은 현재의 자기 참조 구조를 미래까지 확장하는 것이다:

  • 현재 나미래 나의 연결 강화
  • 미래 계획이 현재 행동에 더 강한 영향
  • 장기적 관점의 의사결정 증가

2. 서사적 정체성의 강화

구체적 미래 상상은 일관된 자아 서사를 만든다:

"지금의 내 선택이 → 미래의 나를 만든다"

이 서사가 강할수록 현재 행동의 의미가 명확해진다.

구체적 실천 방법들

1. 미래 자아 시각화

  • 5년 후, 10년 후 자신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기
  • 단순한 목표가 아닌, 생생한 일상과 감정까지 포함

2. 미래 자아와의 대화

  • “미래의 나라면 지금 어떤 선택을 할까?” 자문
  • 중요한 결정 시 미래 관점에서 평가

3. 시간적 연결고리 만들기

  • 현재 행동과 미래 결과의 인과관계 명확화
  • 작은 습관의 장기적 누적 효과 인식

철학적 함의: 유동적 정체성과 책임

정체성은 선택이다

이상한 고리 관점은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한다:

  • 정체성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
  • 매순간 자기 참조적 선택을 통해 “나”를 만들어감
  • 과거와 미래를 현재로 연결하는 서사의 주도권이 우리에게 있음

책임과 자유의 역설

이는 흥미로운 역설을 만든다:

  • 더 큰 자유: 정체성을 고정된 운명이 아닌 선택으로 본다면
  • 더 큰 책임: 현재의 모든 선택이 미래 자아를 만든다면

실존적 의미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나는 지금 이 순간 선택하는 자기 참조적 패턴이며, 동시에 그 패턴을 선택하는 주체다”


더 충실한 삶을 위한 통찰

1. 현재와 미래의 연결 의식하기

매일의 작은 선택들이 어떻게 자기 참조 고리를 통해 미래의 나를 만드는지 의식하기.

2. 서사의 주도권 갖기

과거의 경험이 나를 정의하는 게 아니라, 내가 과거를 해석하고 미래를 설계한다는 관점 유지하기.

3. 정체성의 유연성 받아들이기

변화를 정체성의 위기로 보지 말고, 지속적인 자기 창조 과정으로 받아들이기.


결론: 정체성의 창조적 순환

호프스타터의 이상한 고리로 보면, 정체성은 다음과 같은 창조적 순환 구조다:

현재의 나 → 선택과 행동 → 경험과 기억 → 자아 개념 업데이트 → 새로운 현재의 나

테세우스의 배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변하면서도 연속성을 유지한다. 핵심은 이 과정을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미래의 자아를 타인으로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 연결을 강화할 수 있다. 미래를 생생하게 상상하고, 현재의 선택이 만드는 결과를 의식하고, 일관된 서사를 만들어가는 것.

결국 “나”는 발견의 대상이 아니라 창작의 과정이다. 매 순간 우리는 자신을 다시 쓰고 있다.



참고문헌

  • Hofstadter, D. R. (1979). Gödel, Escher, Bach: An Eternal Golden Braid
  • Hershfield, H. E. (2011). Future self-continuity: how conceptions of future selves transform intertemporal choice. Annals of the New York Academy of Sciences, 1235, 30-43.
  • Parfit, D. (1984). Reasons and Persons. Oxford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