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다니는 사람이 좋은 사람일까
최근 검토한 이력서 도입부에 “오래 다닐 회사를 원한다”는 취지의 문장이 있었다.
지원자는 10년 차가 넘는 경력자였고, 우리가 생각하던 포지션의 연차와는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연차 문제와는 별개로, 그 문장이 처음부터 썩 긍정적으로 읽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마음에 남았다. 자신이 줄 수 있는 가치보다 받고 싶은 것을 먼저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스스로 묻게 됐다. 나는 ‘장기근속’이라는 한 단어에서 안정 지향성, 변화에 대한 태도, 기여 의지까지 너무 많이 추론한 건 아닐까?
아직 결론은 없다. 이 글은 그 질문을 붙잡고 몇 가지 비유와 반례를 늘어놓아 본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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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에서 결혼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
이력서와 면접은 일종의 첫 만남이다. 자신을 소개하고, 매력을 전달하고, 기대를 조율하고, 신뢰를 쌓아 관계를 만든다. 그 뒤로는 각자의 기여를 주고받고, 때로는 협상하고, 관계를 발전시키거나 끝낸다. 채용과 연애는 꽤 닮았다.
그렇게 보면 “장기근속하고 싶다”는 말은 첫 만남에서 “오래 만나고 싶다”, 혹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과 겹친다. 아직 무엇을 함께 만들어갈지 모르는 단계에서 먼 미래부터 선언하면 부담스럽게 들릴 수 있다.
그 말이 부담스러운 건 진심을 의심해서가 아니다. 상대가 ‘나’를 보고 하는 말인지, ‘오래 만날 사람’이라는 자리를 채우고 싶어서 하는 말인지 아직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채용하는 쪽이 “오래 다니고 싶다”는 문장에서 느끼는 묘한 거리감도 비슷하다. 이 회사여서 오래 있고 싶은 건지, 오래 있을 수 있는 회사라면 어디든 괜찮은 건지 그 문장만으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반례가 있다.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처음부터 장기적인 의사를 확인하는 편이 오히려 정직하고 효율적이다. 소개팅 자리에서 결혼 생각이 있는지부터 묻는다고 무례하다고 하지는 않는다.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지 일찍 아는 편이 둘 다의 시간을 아낀다.
채용에도 이런 장면이 있다. 예전에도, 어쩌면 지금도 어떤 대기업은 서류나 면접에서 이직에 대한 생각을 묻는다. 자신들이 자부하는 시스템을 공들여 이식한 직원이 떠나는 것 자체가 비용일 테니까. 그런 곳에서 “오래 다니고 싶다”는 말은 부담스러운 선언이 아니라 처음부터 확인하고 싶은 답이다.
그러니 문제는 장기적인 관계를 일찍 언급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상호 기여와 기대를 맞춰보기 전에 미래의 약속부터 앞세웠느냐가 문제일 수 있다.
“당신과 이런 걸 해보고 싶고, 그래서 오래 만나고 싶다”와 “일단 오래 만날 사람을 찾고 있다”는 둘 다 긴 관계를 말한다. 그런데 앞의 말에는 상대가 들어 있고, 뒤의 말에는 자리만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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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과 깊이는 다른 축이다
관계의 기간과 헌신의 깊이를 따로 놓아보면 네 칸이 생긴다.
| 얕다 | 깊다 | |
|---|---|---|
| 짧다 | 제한적인 거래가 오간다 | 제한된 기간에 높은 신뢰와 성과를 만든다 |
| 길다 | 관성, 높은 이탈 비용, 대안 부족으로 유지된다 | 상호 투자로 함께 성장한다 |
이렇게 놓으면 근속 기간은 관계의 결과를 설명할 뿐, 그 질을 보증하지 않는다. 길든 짧든 마찬가지다. 떠날 수 있지만 선택해서 남는 것과, 떠나기 어려워서 남는 것은 같지 않다. 반대로 짧게 일하고 떠난 사람이 조직에 덜 헌신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연애로 옮겨도 마찬가지다. 짧았지만 서로를 바꿔놓은 연애가 있고, 헤어지기 번거로워서 이어지는 오래된 연애도 있다. 교제 기간만 듣고 어느 쪽이 더 좋은 관계였는지 말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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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 헌신, 안정지향
‘장기근속’이라는 말에는 보통 몇 가지 특성이 함께 묻어 온다. 충성, 헌신, 안정지향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이 단어들은 어느 하나도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쁘지 않다.
충성은 한 조직의 맥락을 오래 쌓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일 수 있다. 같은 성향이 바깥의 기준에 둔감해지는 쪽으로 기울 수도 있다. 헌신은 한 문제를 끝까지 붙드는 힘이지만, 방향이 틀렸을 때도 계속 붙드는 힘이기도 하다. 안정지향은 예측 가능하고 꾸준하다는 뜻이면서, 변화를 피한다는 뜻으로 읽히기도 한다.
어느 쪽으로 읽히느냐는 단어보다 읽는 사람의 사정이 더 크게 정한다. 빠르게 방향을 바꿔야 하는 조직에서 ‘안정’은 경고처럼 들리기 쉽다. 오래 쌓인 맥락이 중요한 조직에서는 같은 말이 장점이 된다.
그렇게 보면 처음의 문장도 두 가지로 읽힌다. 안정성을 원한다는 말은 받고 싶은 것을 먼저 말하는 태도일 수도 있지만,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조건을 투명하게 밝힌 행동일 수도 있다.
그 문장에서 내가 읽은 것은 그의 성향이었을까, 아니면 내 쪽의 기대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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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언어는 바뀌었는데
연애에서는 이제 짧지만 의미 있는 관계, 결혼을 전제하지 않는 관계, 합의에 따른 이별을 어느 정도 말할 수 있게 됐다. 결혼을 택하는 것도, 택하지 않는 것도 각자의 선택으로 이야기된다.
고용의 언어는 아직 그만큼 자유롭지 않은 것 같다. 어떤 곳에서는 ‘오래 다니는 사람’이라는 말에 도덕적 후광이 붙는다. 반대로 변화가 잦은 조직에 익숙한 내게는 “오래 다니고 싶다”는 말이 변화를 꺼린다는 신호처럼 들리기도 했다. 처음의 내 반응이 그랬다. 방향은 반대지만, 둘 다 기간 하나로 사람을 읽는다는 점에서는 같다.
일본의 전통적인 장기고용 관행과 미국의 상대적으로 유동적인 고용시장은 관계에 대한 두 가지 이상형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거친 비유다. 두 나라 안에도 다양한 고용 형태가 있고, 혼인과 고용은 권력 관계도 법적 조건도 크게 다르다.
프로젝트 계약이나 프리랜서 같은 제도적 중간 형태는 있다. 하지만 정규 고용이라는 관계 자체를 설명하는 언어는 아직 빈약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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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도 많이 해보라는 말
연애도 많이 해보라는 말이 있다. 결혼이라는 중요한 결정에 앞서 자기 자신과 사람, 관계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쌓으라는 뜻일 것이다. 몇 번의 관계를 지나며 자신이 무엇을 견디기 어려워하고 무엇을 주고받을 때 편한지 알게 된다. 상대를 보는 눈도 그렇게 생긴다.
기업과의 관계에서도 이런 양상이 가능해져야 하지 않을까.
일자리와 사람의 궁합은 미리 알 수 없고 함께 일해봐야 드러난다는 것은 노동경제학에서도 오래된 설명이다. 만나봐야 안다는 연애의 말과 같은 구조다.
그런데 같은 논리는 장기근속의 편도 든다. 오래 이어지는 관계는 궁합이 좋다고 드러난 관계이기도 하다. 많이 옮겨보라는 말과 오래 머물라는 말은 반대라기보다 순서의 문제에 가깝다. 연애를 많이 해보라는 말도 결국 좋은 결혼을 위한 말이듯이. 물론 많이 옮긴다고 이해가 저절로 쌓이지는 않는다. 연애를 많이 했다고 사람을 보는 눈이 저절로 생기지 않는 것처럼.
그래도 이렇게 놓고 보면 “오래 다니고 싶다”는 말은 경험 끝에 도착한 사람의 말일 수도 있다. 여러 관계를 거친 뒤 이제는 오래 갈 관계를 원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두고 성급하다고 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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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연애만 해왔다
이 주제를 붙잡고 있는 동안 든 감정을 솔직하게 적어둔다.
내가 지금 있는 조직도, 지금까지 있었던 조직들도 맞선이나 결혼을 준비하는 자리라기보다는 소개팅에 가까웠다. 서로를 ‘평생 사랑할 사이’, ‘은퇴까지 다닐 직장’으로 생각하지 않는 곳들이었다. 연애로 치면 나는 줄곧 자유연애만 해온 셈이다.
흔히 말하는 대기업 계열은 다르다. 은퇴까지의 근속을 기대하거나, 이직하더라도 같은 결의 커리어 안에서 오래 머문다. 이쪽은 ‘평생 사랑할 사이’에 더 가깝다.
그런데 요즘 거의 처음으로, 나도 이제 결혼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커리어 이야기다. 실제 삶에서는 작년에 결혼했고, 올해 아이가 생겼다.
동시에, 원래 그랬듯 반대쪽 생각도 든다. 불행한 결혼보다는 자유연애가 낫다. 지금의 시대정신도 그쪽에 가깝지 않은가. 그렇다면 꼭 결혼을 해야 할까. 대기업 같은 곳에 들어가 20년 근속을 꿈꾸며 헌신하는 것만이 답일까.
그렇게 놓고 보니 그 이력서 문장에서 받은 느낌도 조금은 설명이 된다. 평가자로서 나는 함께 연애하며 성장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문장은 “나는 성장할 만큼 했으니 이제 결혼하자”는 제안처럼 읽혔다. 소개팅 자리에 나갔는데 대뜸 청혼을 받은 기분이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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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관계를 원하는가
자유연애에 가까운 조직과 결혼에 가까운 조직 중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빠르게 만나고 헤어지며 서로를 키우는 관계도, 평생을 약속하고 함께 깊어지는 관계도 각자의 가치가 있다. 조직마다 원하는 관계의 형태가 다르고, 한 사람이 원하는 형태도 시기에 따라 바뀐다. 지금의 나처럼.
그렇다면 채용에서 먼저 맞춰봐야 할 것은 충성심의 크기보다, 지금 서로가 어떤 형태의 관계를 원하는지일지도 모른다. 그 지원자와 우리는 어느 쪽이 틀렸다기보다, 서로 다른 관계를 원했던 것일 수 있다.
그 사이 어딘가를 상상해볼 수도 있다. 법적인 고용 안정성은 그대로 두면서, 일정한 시점마다 목표와 기여, 기대, 성장 방향을 다시 합의하는 관계다. 임시로 갱신 가능한 헌신(Renewable Commitment) 이라고 이름 붙여본다. 학계에 정립된 개념이 아니라 이 글에서 쓰려고 붙인 이름이고, 이것도 정답이라기보다 가능한 형태 하나다.
AI가 업무 지식을 기록하고 넘기는 비용을 바꾸고 있다는 점도 생각해볼 만하다. 다만 암묵지와 신뢰는 여전히 쉽게 옮겨지지 않기에, 이 부분은 가설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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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 문장
채용하는 사람은 근속 의향에서 무엇을 읽을까. 어떤 이는 신뢰와 헌신을 읽고, 나는 받고 싶은 것을 먼저 말하는 태도를 읽었다. 그 추론은 언제 유효하고, 언제 편견이 될까.
아직 결론은 없다. 다만 처음의 지원자를 다시 생각한다. 그의 말이 우리 조직에 맞지 않았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한 문장만으로 그의 태도와 역량을 충분히 읽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10년 넘게 일한 끝에 “오래 다닐 회사를 원한다”고 쓴 그는, 내가 이제야 처음 해보는 고민을 먼저 지나온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