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공장이 있잖아
파이 공장이 있잖아
어릴 때부터 전시회나 오케스트라 연주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미술관에서 수십 년을 갈고닦은 화가의 작품 앞에 서 있을 때, 또는 오케스트라가 하나의 호흡으로 움직이는 걸 지켜볼 때, 나는 어떤 깨달음 비슷한 것을 느꼈다. ‘Art’라는 단어가 원래 ‘기술’을 뜻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들이 단순히 “예술가”가 아니라 수년간 기술을 갈고닦은 장인이라는 사실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많은 리그가 있구나.
바이올리니스트들의 리그, 지휘자들의 리그, 현대미술가들의 리그, 고전 복원가들의 리그. 각각의 리그에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파이를 빼앗는 게 아니었다. 각자의 리그가 곧 각자의 파이였다.
잠재의식 속 Zero-sum
그런데 세상에는 이런 풍경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아니, 어쩌면 보았지만 다르게 해석한 사람들. 그들의 잠재의식 깊은 곳에는 이런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 네가 가지면 내가 못 가진다
- 자원은 정해져 있다
- 누군가의 성공은 누군가의 실패를 의미한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과 대화하면 묘한 피로감이 느껴진다. 협력을 제안해도 어딘가 방어적이고, 정보를 공유해도 경계한다. 그들에게 세상은 하나의 파이를 두고 벌이는 쟁탈전이기 때문이다.
파이 공장
나는 다르게 본다.
파이는 하나가 아니다. 파이가 여러 개 있다. 아니, 파이 공장이 있다.
새로운 기술이 생기면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 새로운 문제가 발견되면 새로운 해결책을 만드는 사람이 나타난다. 협력하면 혼자서는 만들 수 없던 것을 만들 수 있다. 가치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창출되는 것이다.
어릴 때 본 그 수많은 리그들이 증거다.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성공한다고 해서 재즈 피아니스트가 실패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무대에서 각자의 게임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일론 머스크의 경고
최근에 일론 머스크가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걸 봤다. Lex Fridman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The pie is not fixed. It’s much better to work on adding to the economic pie, creating more than you consume.”
그리고 X에서도:
“Not transfer of wealth, creation of wealth. The pie will get much larger. The opposite of a zero-sum game.”
오랫동안 혼자 품고 있던 생각을 누군가 명확하게 언어화해주는 경험. 반가웠다.
Zero-sum 사고에 갇힌 사람들에게 그는 경고한다. 세상을 쟁탈전으로 보는 순간, 협력의 기회를 잃는다고. 함께 파이를 키울 수 있는데, 왜 남의 조각을 빼앗으려 하느냐고. 그는 이 철학을 실천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 테슬라의 특허를 공개하고, 슈퍼차저 네트워크를 다른 제조사에 열어준 것처럼.
열린계를 믿는다는 것
나는 어릴 때부터 열린계를 믿어왔다.
닫힌 계에서는 에너지가 보존된다. 누군가 얻으면 누군가 잃는다. 하지만 열린 계에서는 외부에서 에너지가 유입된다. 시스템 전체가 성장할 수 있다.
세상은 닫힌 계가 아니다.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기술, 새로운 연결이 끊임없이 유입된다. 그래서 나는 경쟁보다 협력을, 방어보다 공유를, 쟁탈보다 창조를 선택한다.
파이 공장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