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ex

능선 위에서

· 6min

요즘 AI 덕분에 진짜 많은 게 가능해졌다. 개발자든 디자이너든 누구든 조금만 배우면 뭔가 만들어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나도 개발자로 살고 있지만, 이제는 개발자가 그냥 기술자라는 생각은 잘 안 든다. 어떤 면에서는 크리에이터에 더 가까워진 것 같다.

그런 환경 속에서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을 자주 하게 된다. 특히 후배들을 멘토링하다 보면 더 그렇다. 기회는 넘치는데, 방향을 정하는 게 더 어려워졌으니까.

수학에는 로컬 미니마local minima라는 개념이 있다. 어떤 지점에서는 더 나아질 방향이 없어 보이지만, 전체로 보면 더 좋은 지점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다. 경사 하강법 같은 방식으로 지금 위치에서 가장 나은 방향을 조금씩 찾아갈 수 있다. 이 방식은 실용적이지만 전체를 놓치는 한계도 분명하다. 더 나은 곳이 있다면, 지금 있는 자리에서, 또는 다른 시작점에서 움직여야 찾을 수 있다.

x = initial_position
while not_converged:
    gradient =f(x)
    x = x - learning_rate * gradient

코드로 보면 단순한데, 바로 이 단순함이 함정이다. 가장 가파른 길만 따라가다 보면 더 좋은 곳이 있어도 보지 못한 채 멈추거나 계속 진동할 수 있다. 이 방식은 효율적이지만, 반대로 전체를 놓치는 한계도 분명하다. 더 나은 곳이 있다면, 지금 있는 자리에서 일단 내려와야 다시 찾을 수 있다.

삶도 비슷하게 움직이는 것 같다. 어느 정도 안정되고, 성과도 있고, 나쁘지 않다고 느껴지지만, 가끔은 “이게 전부인가?”라는 생각이 스친다. 5년차 개발자로 살면서, 프론트엔드에서 백엔드로 역할을 확장하는 시기인 지금이 그런 순간인 것 같다. 익숙한 영역에서 벗어나 새로운 산을 오르기 시작한 느낌이다.

그럴 땐 내가 이 방향을 계속 가야 할지, 아니면 전혀 다른 방향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지 고민이 된다. 그래서 로컬 미니마를 벗어나는 몇 가지 전략이 있다는 게 흥미롭다.

랜덤 리스타트(Random Restart): 여러 무작위 시작점에서 탐색을 시작해 전역 최적해를 찾는 방법. 한 방향에서만 답을 찾지 말고, 아예 다른 곳에서 다시 시작해본다.

시뮬레이티드 어닐링(Simulated Annealing): 높은 온도에서 시작해 점진적으로 온도를 낮추며, 초기에는 나쁜 해도 확률적으로 수용하는 방법. 지금보다 나빠 보여도, 일단 한번 가본다.

유전 알고리즘(Genetic Algorithm): 자연선택과 유전 원리를 모방해 해집단을 진화시키는 방법. 좋은 해답들을 서로 교차(crossover)하고 변이(mutation)시켜 예상 밖의 조합을 시험한다.

Adam 옵티마이저(Adaptive Moment Estimation): 각 매개변수에 대해 적응적 학습률을 사용하며, 과거 기울기의 1차 및 2차 모멘트를 추정하는 방법. 방향도, 속도도, 상황에 따라 적응적으로 바꾼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접근방식들이지 않은가?

카뮈는 부조리 속에서도 계속 살아나가자 한다. 우리는 계속 나아갈 테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가장 높은 봉우리를 향해 가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넓게 돌고, 누군가는 높게 오른다. 누군가는 자주 멈추고, 누군가는 계속 걷는다. 누군가는 즐겁게. 그래서 굳이 최적화를 강박처럼 붙들지 않아도 된다. 지금 이 방향이, 이 속도가 나에게 의미가 있다면 그걸로 충분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각자의 산등성이 위에서 다음 봉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뿐이다. 가끔은 내려와야 하고, 가끔은 그대로 머물러도 된다.

참고한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