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코드보다 비싸진 시대 — 아니, 원래 그랬다
질문이 코드보다 비싸진 시대 — 아니, 원래 그랬다
2026년 2월, 전 테슬라 AI 디렉터 Andrej Karpathy가 한 문장을 던졌다.
“The profession is being dramatically refactored.”
그는 덧붙였다. “I could be 10X more powerful if I just properly string together what has become available.” 이미 있는 것을 엮는 능력. 최전선에 서 있는 사람이 스스로의 부족함을 고백하는 방식치고는 묘하게 정직했다.
나는 이 문장에서 다른 것을 읽었다. ‘이미 있는 것을 엮는다’는 것은 도메인의 경계를 넘나들며, 적절한 도구를 골라내고, 올바른 질문을 적절한 곳에 던질 줄 아는 능력이다. 코딩 실력이 아니라 질문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사실, 질문은 원래부터 코드보다 비쌌다.
다섯 번째 지식
Hacker News에 올라온 사례 하나. 영업팀 8명이 매일 아침 3시간을 CRM 양식 작성에 쓰고 있었다. 팀은 “더 빠른 UI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개발자는 코딩을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를 물었다. “고객 카테고리마다 필요한 옵션이 다른가요?” 답이 “그렇다”로 나오자, 해결책은 “UI 속도 개선”이 아니라 “카테고리별 동적 양식”이 되었다. 8명이 3시간 걸리던 작업이 1명이 30분이면 끝나는 일이 됐다. 코드를 한 줄도 짜기 전에 문제의 90%가 해결된 셈이다.
이런 일은 나에게도 일상이다. 주니어가 복잡한 동시성 처리에 며칠을 쏟고 있을 때, “균등 분배가 목표야, 정확한 순번이 목표야?” 한 마디면 구현 복잡도가 절반 이하로 줄곤 한다. 시니어와 주니어의 차이는 코딩 속도가 아니다. 어떤 질문을 먼저 던지느냐다.
90년대에 경제학자들이 분류한 지식의 네 범주가 있다. Know-what(사실), Know-why(원리), Know-how(실행), Know-who(인맥). 교과서적 분류인데, LLM이 이걸 뒤흔들었다. Know-what, Know-why, Know-how의 상당 부분을 이제 AI가 대체하거나 민주화한다. API 키 하나면 지능을 임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임대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다섯 번째 지식 유형을 제안한다. Know-Where — 적절한 질문을 어디에,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 아는 능력.
이건 새로운 게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고 싶다. 잠깐.
이건 LLM이 만들어낸 새로운 현실이 아니다.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왜 그 문제가 중요한지, 어떤 트레이드오프를 감수할 것인지 — 이런 질문들이 언제나 코딩보다 먼저 왔고, 더 중요했다. 다만 코딩의 장벽이 높았기 때문에 우리는 코딩을 잘하는 사람에게 높은 몸값을 지불해왔을 뿐이다. LLM이 그 장벽을 낮추니까, 그동안 숨어있던 게 드러난 거다.
반대의 사례도 말해야 공정하다. 한 시니어 개발자가 AI 코딩 에이전트에 요구사항을 그대로 붙여넣고 위임했다. 15분 후: 7개 파일이 무작위로 수정되고 새로운 버그만 생겼다. 결국 git reset. AI에게 대충 던지면, AI도 대충 만든다.
여기에 역설이 있다. Microsoft Research에 따르면, GenAI를 많이 사용할수록 비판적 사고 능력이 감소한다. 질문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는데, 질문하는 능력은 도구를 쓸수록 퇴화한다. “기초를 버려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시장은 먼저 움직였다
Claude Code를 만든 Boris Cherny는 지난달에 IDE를 한 번도 열지 않았다고 했다. Opus가 약 200개의 PR을 썼다고. 도구를 만든 사람이 그 도구에 구현을 완전히 위임한 거다.
이스라엘 개발자 Maor Shlomo는 혼자서 AI 기반 앱 빌더를 만들었다. AI가 코드 대부분을 작성하고, 본인은 방향과 의사결정만 담당했다. 6개월 만에 35만 유저, 월 20만 달러 매출. Wix에 8000만 달러에 매각됐다. BE도 FE도 아닌 한 사람이, 질문과 판단만으로 만든 결과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카카오에서는 비개발자가 ChatGPT와 Claude로 키보드 변환기, 머메이드 에디터 같은 실무 도구를 직접 만들어 쓰고 있다. “디자인과 기능을 알아서 추가해 주세요” 한 줄이면 된다. BE/FE 경계가 아니라, 개발자와 비개발자의 경계마저 흐릿해진 거다.
엔트리레벨 개발자 채용은 2년 새 60% 감소했다. 반면 AI Engineer는 LinkedIn 기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직군 1위다. 시장은 이미 BE/FE를 사지 않는다.
Karpathy 식으로 말하면, 개발자는 이제 “orchestrating agents” 하는 사람이다. 지휘자는 모든 악기를 완벽하게 연주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모든 악기가 어떤 소리를 내는지는 알아야 한다. 이 구조는 사업 대표가 팀을 꾸리는 방식과 본질적으로 같다.
노정석 비팩토리 대표는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이 돼야 되는 거는 예술가가 돼야 되는 거거든요.” 그가 말하는 예술가는 앙트러프러너와 같다. 없는 가치를 정의하고, 세상에 이게 옳다고 외치고, 사람들이 따라오게 만드는 것. “사장이 실무를 하는 회사는 엄청나게 강력해질 거고요. 사장이 실무를 하지 않는 회사는 없어져 버릴 거예요.” 개발자에게 요구되는 역량이 경영자의, 아니 예술가의 역량과 겹치기 시작했다. BE/FE라는 구분이 왜 낡았는지, 이보다 분명한 신호를 나는 모른다.
채용 공고를 다시 쓸 때
“React 3년 이상”, “Spring Boot 경험자” — 이런 항목들이 좋은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사람을 걸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채용 공고를 쓸 때, 어떤 항목을 먼저 적었는가.
개발자도 직군 정체성을 재설정해야 한다. “나는 BE 개발자입니다”가 가능성을 얼마나 좁히고 있는지 생각해볼 때다. 어제 짠 코드는 AI가 내일 더 빠르게 짤 수 있다. 하지만 오늘 던진 좋은 질문은 누구도 대신 못 한다. 노정석 대표가 회사에 AI 파이프라인을 만들어 놓고 발견한 게 있다. “재밌는 건데 사람들은 절대 질문하지 않아요. 하던 대로 하고 싶어 해요.” 도구는 이미 있다. 질문하는 사람이 없을 뿐이다.
질문을 잘 던지는 사람은 예전에도 잘 먹고살았다. 우리가 그걸 ‘코딩 잘하는 사람’이라고 잘못 불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