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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iguration에서 Conversation으로: 자동화는 어떻게 '도구'에서 '지능'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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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iguration에서 Conversation으로: 자동화는 어떻게 ‘도구’에서 ‘지능’이 되었나


n8n 워크플로우를 처음 열었을 때의 기억이 있다. 화면 가득 펼쳐진 수십 개의 노드, 노드 사이를 잇는 와이어, 각 노드를 클릭하면 나오는 파라미터 설정 화면. 트리거를 고르고, 필터를 걸고, API 키를 넣고, 출력 스키마를 다음 노드의 입력에 매핑하고. 자동화를 “만든다”는 건 결국 이 설정(Configuration)의 미로를 통과하는 일이었다. 숙련된 사용자에게는 레고 블록 같은 쾌감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 미로는 입구에서부터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2025년, 같은 n8n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AI Agent 노드 하나가 수백 개 노드 체인을 대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노드를 배치하는 대신 자연어로 지시하고, 스키마를 매핑하는 대신 에이전트가 알아서 데이터를 해석했다. 설정하던 도구가 대화하는 지능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것은 n8n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동화 업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전환을 겪고 있다. Configuration에서 Conversation으로.


”If This Then That”의 황금기, 그리고 벽

자동화의 역사는 곧 Configuration의 역사였다. Zapier가 “트리거를 고르고, 액션을 설정하라”는 단순한 공식으로 220만 기업을 사로잡았고, Make(구 Integromat)는 더 정교한 분기와 루프로 기술적 사용자의 마음을 얻었다. n8n은 self-host 가능한 fair-code 모델로 개발자 커뮤니티를 키웠다. 이 도구들의 공통점은 명확했다: 사람이 각 단계를 하나하나 설정한다. 자동화의 산출물은 “도구”였고, 내가 만들어놓고 내가 써야 했다.

문제는 현실의 업무가 Zap 하나로 담기엔 너무 복잡하다는 데 있었다. 노드가 늘어날수록 설정은 기하급수적으로 복잡해졌고, 도구 간 컨텍스트 스위칭 비용이 쌓였다. Emergn의 2025년 조사는 이 피로감을 숫자로 보여준다 — 직원의 50%가 디지털 전환 피로를 경험하고, 45%가 번아웃을 보고했으며, 36%는 퇴직까지 고려했다. 새 도구를 배우는 것 자체가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복잡성은 채택의 적이다. 그리고 이 벽 앞에서, 업계는 전혀 다른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전환의 신호들

2024년 3월 6일, Zapier의 공동창업자 Mike Knoop이 무대에 올라 Zapier Central을 발표했다. “AI 봇에게 앱에서 할 작업을 가르치는 실험적 워크스페이스.” 7,000개 앱 통합의 제왕이 “트리거-액션”이 아닌 “대화-지시”를 전면에 내세운 순간이었다. 1년 반 뒤인 2025년 9월 ZapConnect에서, Zapier는 스스로를 **“AI Orchestration Platform”**이라 재정의했다. 트리거-액션의 아이콘이 대화형 오케스트레이션을 선언한 것은 택시 회사가 자율주행을 발표한 것만큼 드라마틱한 피벗이었다.

Make도 같은 해 10월 뮌헨 Waves ‘25에서 Maia를 공개했다. 자연어 대화로 자동화 시나리오를 end-to-end 생성하는 “개인 AI 자동화 빌더.” 기존에 노드를 드래그하고 파라미터를 채우던 행위가 “이런 걸 자동화하고 싶어”라는 한 문장으로 대체됐다. 이 글의 테제를 가장 정확히 구현한 제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Salesforce는 더 공격적이었다. 2024년 9월 Agentforce 발표를 시작으로, 12개월 안에 2.0, 2dx, 3, 360까지 다섯 번의 메이저 버전을 쏟아냈다. 업계 최고 속도의 에이전트 전환이었다. 특히 Agentforce 2dx의 슬로건이 의미심장하다 — “채팅 인터페이스를 넘어 프로액티브 에이전트로.” Configuration을 넘어선 것도 모자라, Conversation조차 넘어서겠다는 선언이었다.

Microsoft는 Power Virtual Agents를 Copilot Studio로 리브랜딩하면서 이름 자체에서 Configuration의 잔향을 지웠다. “일상 언어로 필요한 것을 설명하면 자동화 플로우가 만들어진다.” 4시간 걸리던 플로우 생성이 40분으로 줄었다는 고객 보고가 뒤따랐다. 그리고 2025년 9월, Computer Use를 프리뷰하며 에이전트가 가상 마우스와 키보드로 화면을 직접 조작하는 미래까지 내놓았다. API도 MCP도 없는 영역까지 자동화가 뻗어나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에이전트와 “대화”한다고 할 때, 그 대화의 출력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2026년 2월, Thesys가 Agent Builder를 출시하며 흥미로운 답을 내놓았다. 에이전트가 텍스트로 응답하는 대신, 차트, 폼, 카드, 테이블 같은 인터랙티브 UI를 실시간으로 생성하는 것이다. 이들이 부르는 이름은 Generative UI. 예를 들어 “인보이스 PDF를 DB 레코드와 비교해줘”라고 말하면, 에이전트는 장문의 텍스트 대신 인보이스 번호 입력 필드, 비교 옵션 토글, 단계별 처리 현황이 담긴 인터랙티브 폼을 띄운다. 대화의 결과물이 읽는 것에서 쓰는 것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Configuration → Conversation의 전환이 “입력”의 변화라면, Generative UI는 “출력”의 변화다. 이 이야기는 별도로 더 풀어볼 만하다.


왜 하필 지금인가

이 전환이 2025년에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LLM이 “쓸 만해졌다.” Andrew Ng의 실험이 이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GPT-3.5의 코딩 벤치마크 점수는 48.1%, GPT-4는 67%. 하지만 GPT-3.5를 에이전트 루프에 넣자 95.1%를 달성했다. 모델 한 세대를 건너뛴 것보다 에이전트 워크플로우 — 반복적 대화, 도구 사용, 자기 검증 — 가 더 큰 도약을 만든 것이다. Ng의 말을 빌리면, “에이전트 워크플로우가 다음 세대 파운데이션 모델보다 더 큰 AI 진보를 가져올 것이다.”

둘째, 돈이 방향을 말해준다. 2025년 글로벌 AI 벤처 투자는 203B,전년대비75203B, 전년 대비 75% 증가했다. 전체 VC 투자의 34%가 AI로 쏠렸고, 에이전틱 AI 스타트업에만 상반기 2.8B가 들어갔다. 가장 상징적인 숫자는 n8n의 궤적이다: 2025년 3월 Series B에서 270M밸류에이션,불과6개월뒤SeriesC에서270M 밸류에이션, 불과 6개월 뒤 Series C에서 2.5B. 9배. 67명의 팀으로 ARR $40M을 달성한 이 회사의 밸류에이션이 이렇게 폭등한 건, 투자자들이 노드 빌더가 아닌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션 플랫폼”에 베팅했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 전통 RPA의 상징 UiPath는 주가가 50% 빠졌다. 매출 성장률이 24%에서 9%로 급감했다. 한쪽이 9배로 뛰는 동안 다른 한쪽이 반토막 나는 장면은, 패러다임 전환이 시장에서 실시간으로 가격에 반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MCP라는 기술 인프라가 깔렸다. n8n, Make, Zapier, Langflow 모두 2025년에 MCP(Model Context Protocol) 지원을 핵심 기능으로 추가했다. MCP는 에이전트가 외부 도구와 “대화”할 수 있게 하는 프로토콜이다. USB-C가 기기 연결을 표준화했듯, MCP가 에이전트-도구 연결을 표준화하면서 Conversation 패러다임의 기술적 기반이 완성됐다.


”도구”에서 “지능”으로: 무엇이 바뀌는가

이 전환의 본질은 산출물의 변화다. Configuration 시대의 산출물은 “도구”였다. 내가 설정해서, 내가 돌리는 것. 누군가에게 인계하면 그 사람도 도구의 사용법을 배워야 했다. Conversation 시대의 산출물은 “지능”이다. 에이전트에게 업무를 가르치면, 누가 맡더라도 대화만으로 수행할 수 있다.

Wade Foster(Zapier CEO)는 이 변화를 4단계 스펙트럼으로 정리했다. 첫 번째, AI 없는 전통 워크플로우 — 순수한 Configuration. 두 번째, AI가 한 번의 판단을 내리는 AI 워크플로우. 세 번째, AI가 여러 판단을 내리지만 정해진 경로를 따르는 Agentic 워크플로우 — Configuration과 Conversation의 전이 구간. 네 번째, AI가 도구와 메모리와 지식을 가지고 스스로 경로를 결정하는 순수 에이전트 — Conversation의 완성형.

하지만 Foster의 핵심 메시지는 의외로 절제되어 있다: “당신에게 필요한 건 에이전트가 아닐 수도 있다. 생각하는 워크플로우가 필요한 것이다.” 가장 성과를 내는 조직은 “결정론적 워크플로우와 에이전트를 혼합할 줄 아는” 곳이라는 것이다. Configuration과 Conversation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스펙트럼이다.


명사들이 보는 풍경

Andrej Karpathy는 이 전환에 가장 깔끔한 프레임을 씌웠다. Software 1.0은 사람이 코드를 쓴다. Software 2.0은 데이터가 모델을 훈련한다. Software 3.0은 자연어로 프로그래밍한다. “LLM은 새로운 종류의 컴퓨터이고, 당신은 그것을 영어로 프로그래밍한다.” 노드를 배치하고 파라미터를 설정하던 행위가 자연어 한 줄로 대체되는 것 — 그것이 Software 3.0이고, 그것이 Configuration에서 Conversation으로의 전환이다.

Satya Nadella는 그 파급을 더 과감하게 예측했다. “SaaS 앱이라는 개념 자체가 에이전트 시대에 붕괴할 것이다. 비즈니스 로직이 전부 AI 에이전트로 이동한다.” SaaS의 본질이 Configuration 인터페이스 — 폼, 대시보드, 설정 화면 — 라면, 그 인터페이스가 에이전트와의 대화로 녹아드는 미래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Nadella는 에이전트 민주화를 강조했다: “에이전트를 만드는 것이 Word 문서나 PowerPoint를 만드는 것만큼 간단해야 한다.”

Bill Gates는 2023년에 이미 방향을 짚었다: “개인 에이전트를 쥔 자가 승리한다. 당신은 더 이상 검색 사이트에, 생산성 도구에, 아마존에 가지 않게 될 것이다.” 각 서비스의 Configuration UI를 방문할 필요 없이, 에이전트에게 한 마디 하면 되는 세상이다.

Sam Altman은 이 에이전트를 “주니어 직원”에 비유했다. “지금 사람들의 업무를 보면, AI 에이전트 여럿에게 일을 할당하고, 품질을 확인하고, 피드백을 주는 것이다. 아직 상대적으로 주니어인 직원 팀을 관리하는 것과 비슷하다.” 설정하는 게 아니라 매니징하는 것. 도구를 만지는 게 아니라 대화하는 것.


남은 질문들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Gartner는 적절한 거버넌스 없이는 2027년까지 에이전틱 AI 프로젝트의 40% 이상이 ROI 부족으로 취소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에이전트에게 자율성을 줄수록 통제와 감사의 난이도는 올라간다. McKinsey에 따르면 AI로 실제 EBIT가 개선됐다고 답한 기업은 39%에 불과하다. 도입은 쉬워도 확장은 어렵다 — 74%의 조직이 AI 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전환이 “대체”가 아닌 “레이어링”이라는 사실이다. 리서치에서 확인한 모든 회사 — n8n, Zapier, Make, Salesforce, Microsoft, ServiceNow — 가 기존 Configuration 인프라를 버리지 않았다. 그 위에 Conversation 레이어를 올렸다. Zapier의 7,000개 앱 통합은 에이전트 시대에도 여전히 그 에이전트의 “손과 발”이다. Configuration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인프라로 내려가고, Conversation이 인터페이스로 올라오는 것이다.

Gumloop의 철학이 이를 잘 요약한다: “자동화의 90%는 인프라, 10%가 AI.” 화려한 대화 인터페이스 아래에는 여전히 견고한 Configuration의 토대가 필요하다.


맺으며

ServiceNow는 자사의 AI 진화를 네 단계로 정리했다. Scripted Workflows(2012-2017), Predictive Workflows(2018-2022), Generative AI(2023-2024), 그리고 Agentic Workflows(2025+). 깔끔하고 설득력 있는 프레임이지만, 나는 이것을 더 단순하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앱을 만든다”에서 “에이전트에게 업무를 가르친다”로 이동하고 있다.

설정 화면 앞에서 노드를 끌어다 놓던 시간이, 에이전트와 대화하며 의도를 전달하는 시간으로 바뀌고 있다. 그리고 이 변화는 자동화 도구를 만드는 사람뿐 아니라, 자동화 도구를 쓰는 모든 사람의 업무 방식을 바꾼다. 더 이상 도구의 사용법을 배울 필요 없이, 무엇을 원하는지만 말하면 된다.

Karpathy의 “2025-2035는 에이전트의 10년”이라는 선언이 맞다면, 우리는 아직 첫 페이지를 넘기고 있을 뿐이다. 나머지 챕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글자 그대로, 대화를 통해 알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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