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하원칙은 어디서 왔고, 왜 그 순서일까

· 11min

육하원칙은 어디서 왔고, 왜 그 순서일까

도메인 주도 설계를 하다 보면 이벤트 하나하나를 정확히 이해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매일 느낀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 이 여섯 가지가 빠지면 도메인의 핵심이 흐려진다. 이벤트 스토밍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결국 육하원칙이 곧 이벤트의 뼈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육하원칙, 어디서 온 걸까. 놀랍게도 이천 년이 넘었다. 이걸 알게 된 건 사실 블로그 글을 쓰기 전에 그록에게 물어보면서부터다. 내가 먼저 떠올린 추론이 있었고, 그 추론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역사적 배경이 하나씩 붙었다.

내 추론: 관련성 필터가 먼저, 해석은 나중

내가 생각하기에 육하원칙의 순서는 정보 전달의 우선순위다. 누가, 언제, 어디서 — 이 세 가지는 전부 관련성 필터다. 이 일이 나와 무슨 상관인지, 시간축으로 나한테 가까운 일인지, 공간축으로 나한테 가까운 일인지. 독자가 가장 먼저 판단하는 단계다.

그 다음 무엇을 어떻게로 가는 건 자연스럽다. 무엇을 먼저 알아야 어떻게가 의미가 있으니까. 행위의 결과와 수단은 한 덩어리로 처리된다.

그리고 왜가 맨 마지막인 건 관련성 판단이 아니라 해석이기 때문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가 다 갖춰져야 왜를 추론할 수 있다. 왜를 먼저 물으면 빈 이유를 그럴듯한 이야기로 채우게 되는데, 흔히 사후 합리화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인지 편향으로 읽어 본 순서

왜가 늦게 오는 건 동기를 덜 중요하게 여겨서가 아니다. 동기는 행위 다음에야 해석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지 편향 쪽은 이름 붙은 현상이 있다. 기본 귀인 오류 — 남의 행동을 보면 상황이나 이유보다 그 사람 성격 탓으로 돌리는 편향1. 육하원칙으로 치면 왜를 누가로 바꿔버리는 거다. 반대로 자기 행동엔 왜를 관대하게 대는 행위자-관찰자 편향도 있다2. 남에겐 성격, 나한테는 상황.

면접관으로 들어가면서 나도 이 오류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그 사람이니까 그랬을 거라는 판단을 하기보다, 그 사람의 상황과 이유를 성급하지 않게 추론해 보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다.

역사적 배경: 이천 년 된 수사학이 저널리즘을 거쳐 정착하다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행위를 따질 때 살펴야 할 항목을 나열했다. 누가, 무엇을, 무엇에 관해, 무엇으로, 무엇을 위해, 어떻게3. 2010년 연구에 따르면 이게 진짜 원조다4.

이후 헤르마고라스가 이를 수사학의 일곱 상황으로 정리했다.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어떤 수단으로5. 16세기 토머스 윌슨은 누가, 무엇을, 어디서, 어떤 도움으로, 왜, 어떻게, 언제 순의 운문으로 만들었고6, 20세기 초 키플링은 무엇, 어디서, 언제, 어떻게, 왜, 누가 순의 시로 재탄생시켰다7. 같은 무렵 미국 저널리즘 교과서가 리드가 답해야 할 질문으로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를 실으면서 5W1H로 정착했다89.

순서가 하나였던 적이 없다. 순서가 진짜 의미를 갖는 건 저널리즘에서다.

한국식과 영미식의 차이

여기서 두 가지 순서를 구분해야 한다. 하나는 사전이 나열하는 순서, 다른 하나는 실제 기사가 정보를 배치하는 순서다.

나열 순서부터. 한국 표준국어대사전과 위키백과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순서를 적는다10. 일본과 중국의 나열 순서는 한국과 조금씩 다르지만, 왜와 어떻게가 뒤로 가는 건 같다11.

배치 순서는 다르다. 영미식은 고정 순서가 아니라 역삼각형 구조 — 가장 중요한 사실을 리드에 몰아넣는 방식이다8. 그래서 사건 자체를 알리는 기사면 what이 맨 앞, 인물 중심이면 who가 앞으로 오는 식이다.

내 추론으로는 한국식은 관련성 필터를 앞에 몰아넣고, 영미식은 사건 자체를 앞에 두는 경향이 있다. 영미식이 더 합리적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실제 기사로 확인하기

2026년 9월 9일 각 매체 첫 화면의 헤드라인을 비교해 보면 이 차이가 더 선명해진다.

한국 기사들은 누가, 언제, 어디서를 앞에 두는 경향이 보였다. 한겨레의 “이 대통령, 마크롱과 정상회담…’호르무즈 항행 자유 긴밀 공조‘“는 누가, 어디서, 무엇을 순으로 배치한다. 조선일보의 “北, 한 달간 MDL 20여회 침범…작년 한 해보다 더 많이 넘어와”도 누가, 언제, 무엇을 앞에 둔다. 동아일보의 “韓佛 ‘호르무즈 항행 자유 긴밀 공조’…美, 한국에 11월까지 파병 촉구”는 누가, 어디서, 무엇을 먼저 던진다. 중앙일보의 “결국은 ‘대통령의 숙제’가 된 법무·여가부 인사”도 사건보다 누가 앞에 있다.

영미 기사는 사건 자체를 먼저 던지는 경우가 많았다. 뉴욕타임스의 “Why Trump Is Gathering Republicans in Texas, and Iran Targets U.S. Warships”는 왜와 사건을 앞에 두고, “Iran Signals Readiness to Escalate Fight in Face of Rising U.S. Pressure”도 사건 자체를 리드에 놓는다. 로이터의 “War expands as Iran-backed Houthis attack Saudi cities and US strikes Iranian tankers”는 사건 전개를 먼저 알린다. 파이낸셜타임스의 “Oil nears $100 as US launches new strikes on Iranian tankers”도 마찬가지다.

결론

결국 육하원칙은 단순한 체크리스트가 아니다. 이천 년 된 수사학이 저널리즘을 거쳐 도메인 설계까지 이어진 정보 전달의 뼈대다. 순서는 보편적 진리가 아니라 정보 전달 방식 중 하나일 뿐이고, 그 한계를 아는 게 더 중요하다.

Footnotes

  1. Lee Ross, “The Intuitive Psychologist and His Shortcomings: Distortions in the Attribution Process”, Advances in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10 (1977): 173–220. ↩

  2. Edward E. Jones and Richard E. Nisbett, “The Actor and the Observer: Divergent Perceptions of the Causes of Behavior”, in Attribution: Perceiving the Causes of Behavior (General Learning Press, 1971). ↩

  3. Aristotle, Nicomachean Ethics III.1, 1111a3–6. 그리스어 원문(Perseus), Rackham 영역(Perseus). 이 목록에는 ‘언제’가 없다. ↩

  4. Michael C. Sloan, “Aristotle’s Nicomachean Ethics as the Original Locus for the Septem Circumstantiae”, Classical Philology 105.3 (2010): 236–251. doi

    .1086/656196. ↩

  5. 헤르마고라스의 책은 전해지지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것으로 전해 온 De rhetorica §7이 “quis, quid, quando, ubi, cur, quem ad modum, quibus adminiculis”를 헤르마고라스의 것이라고 적었다. C. Halm (ed.), Rhetores Latini Minores (Teubner, 1863), p. 141. archive.org 스캔. ↩

  6. Thomas Wilson, The Arte of Rhetorique (1553; 개정판 1560), Book I: “Who, what, and where, by what helpe, and by whose: Why, how, and when, doe many things disclose.” 1560년판 전자텍스트, 1553년판 스캔. ↩

  7. Rudyard Kipling, “The Elephant’s Child”, Just So Stories (1902): “Their names are What and Where and When / And How and Why and Who.” Project Gutenberg. ↩

  8. Willard G. Bleyer, Newspaper Writing and Editing (Houghton Mifflin, 1913), pp. 66, 94. 리드에서 “Who? What? When? Where? Why? and How?”에 답하되, 가장 흥미로운 면을 첫 어구에 두라고 가르친다. Project Gutenberg. ↩ ↩2

  9. Leon Nelson Flint, Newspaper Writing in High Schools (University of Kansas, 1917), p. 47. “The five W’s”라는 이름이 여기 나온다. archive.org. ↩

  10.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육하원칙」; 한국어 위키백과 「육하원칙」. ↩

  11. 일본어 위키백과 「5W1H」는 When, Where, Who, What, Why, How 순, 중국어 위키백과 「六何法」는 何人, 何時, 何事, 何地, 為何, 如何 순. ↩